나의 로망묘, 실버 뱅갈 고양이
2016년 9월 29일 세 번째로 입양한 고양이가 집에 도착했습니다.
보시다시피 품종 고양이이며 선호 층이 제법 있는 뱅갈 고양이입니다.
뱅갈 고양이는 저의 로망묘(꼭 반려해보고 싶은)였어요. 하지만 생명을 금전 거래하는 것을 지양하기 때문에 나와 인연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포기했죠. 그런데 운명처럼 지인들이 임신한 뱅갈 고양이 부부를 구조하게 되었어요. 엄마 고양이는 총 일곱 마리의 아가들을 낳았고, 그 중 둘째가 제 품에 오게 되었어요.
'루치'라는 이름은 블루치즈에서 따왔어요. 제가 치즈에 환장해서 애들 이름을 치즈로 지은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첫째와 둘째 이름을 치즈에서 따오게 되면서 그게 셋째와 넷째에도 적용이 되었어요.
루치의 엄마, 아빠 중 엄마가 실버 뱅갈이에요. 그래서 몇 아이들은 실버 코트를 입고 태어났어요. 밝은 색상의 코트에 검은 줄무늬와 점무늬가 선명해서 무척 매력적인 외모를 갖고 있죠. 뱅갈 고양이 남아는 골격이 크게 발달해 있어요. 거기에 근육질이라 체격이 상당히 큰 편입니다.
언뜻 봐도 '멋있다!'는 감탄사가 나오는 외모가 뱅갈 고양이를 선호하게 되는 큰 요인 중 하나죠.
저도 이 녀석 예쁜 얼굴에 반해서 입양을 결정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일곱 아이 어릴 때 사진을 다시 볼 일이 있었는데, 그 중 얘가 제일 얼굴이 못났더라고요 ㅎㅎㅎㅎㅎㅎㅎ 그 당시에 눈에 콩깍지가 씌었나 봐요;;)
하... 그런데, 정말 예쁜데, 아니 진짜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이름을 잘못 지은 걸까요? 루치는 집에 온 첫날부터 고양이 양아치, 냥아치 기질이 다분하더라고요. 형들 패고 다니는 건 기본이고 길생활을 해본 적도 없는 녀석이 왜 그리 식탐이 많은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집이 떠나가라 울고, 집사 패고, 형들 패고. 정말 잘 때가 제일 예쁜 녀석입니다. ;ㅁ;
뱅갈 고양이의 사고력
뱅갈 고양이는 정말 영리합니다.
그리고 똑똑한 머리로 온갖 사고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집안의 문을 다 열어놓고 생활하기 때문에 방문은 열 줄 모르지만, 대신 서랍을 아주 잘 열어요. 자고 일어나면 난장판이 되어 있는 일이 종종 있지요.
뭐든 들어갈 틈만 있으면 머리부터 밀어 넣고 보는데다가 이빨은 어찌나 날카롭고 단단한지. 온라인으로 주문한 사료가 왔는데, 내일 뜯어야지 하고 박스 채로 거실에 두고 잤다가 다음 날 기함을 한 적이 있어요.
박스를 뚫고 안에 사료 봉투까지 뜯어서 그 안의 사료를 찹찹 먹고 있더라고요.
덕분에 저는 정말 부지런해졌어요. 사료가 오면 바로 뜯어서 잠금장치가 있는 곳에 넣어 보관하고, 컵도 바로바로 치우고, 일단 루치가 관심 가질만한 건 빠르게 치우는 게 생활화되었어요.
그럼에도 루치가 깬 컵이 열 개가 넘어요. 제가 눈앞에 버젓이 있는데, 저를 빤히 보면서 컵이나 물병을 앞발로 당겨 떨어트리기도 해요. 뱅갈 고양이는 물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오히려 놀잇거리로 생각하죠. 루치는 물그릇의 물을 앞발로 한참 퍼낸 다음, 바닥에 고인 물을 마시는 놀이를 종종 해요. 그래서 우리 집 고양이 물그릇 주변엔 항상 수건이 깔려있어요.
영리하기 때문인지 뱅갈 고양이는 표정도 매우 다양합니다. 제가 낮은 목소리로 부르면 쭈굴해진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살살 치고, '냠냠'이라고 말하면 간식 주는 걸 알고 신나서 뛰어 와요. 원하는 게 있을 땐 처량한 표정에 침울한 목소리로 울음소리를 내기도 해요. 예쁘다 멋지다 관심을 주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가슴을 내밀고 머리를 치켜들어요.
사고뭉치에 가끔 너무 얄밉게 보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집에 혼자 있으면서 큰 소리로 웃는 일은 대부분 루치와 관련이 있어요. 뱅갈 고양이는 반려하기에 쉬운 고양이는 아니에요. 그런데 정말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요.
뱅갈 고양이를 반려하고 싶다면? 자가 진단 질답 필수!
뱅갈 고양이는 매력적이에요. 아름답기까지 하죠. 그런데 뱅갈 고양이를 반려하는 것은 조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요.
한때 버려진 고양이 중 뱅갈 고양이의 비중이 정말 높았던 적이 있어요. 아마 뱅갈 고양이의 외모에 매력을 느꼈겠지만, 막상 함께 살아보니 어려워 버렸겠죠.
뱅갈 고양이를 반려하고 싶다면 먼저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고 답을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서로 보듬어 오랜 시간 행복하기 위해 만나는 거니까요.
1. 뱅갈 고양이가 충분히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이 있나? 뱅갈 고양이는 에너지가 무척 매우 넘치는데, 그 에너지를 소진할 수 있도록 캣타워, 캣폴, 캣휠 등 뛰고, 오르고, 점프할 수 있는 공간과 용품을 마련해 줄 수 있나?
2. 뱅갈 고양이의 지치지 않는 활동성을 감당할 체력이 있을까? 매일 15분 이상은 꼭 사냥 놀이를 해줄 수 있을까?
3. 뱅갈 고양이는 고집이 세고 제멋대로 일 수 있어서 하지 못하게 막을수록 더 한다는데, 고양이를 인간보다 아래가 아닌 '반려'라고 생각하고 참을 수 있을까?
4. 뱅갈 고양이는 요구 사항이 많은데, 원하는 걸 들어줄 때까지 졸졸 쫓아다니고 끊임없이 울어도 감당할 수 있을까?
5. 고양이가 아파도, 고양이가 늙어도, 고양이의 수명이 내가 생각한 것과 달라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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