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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봤어요

코숏 HCM 과 고양이 장례 이야기 1 (21그램 반려동물 장례식장)

by 냥호구마 2021.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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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020년 12월 11일 반려동물 장례식장 21그램에서 아이를 떠나보냈어요.

 

2016년 2월, 페이스북에서 8차선 도로 중앙 화단에 고립된 고양이에 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어요. 어미에게서 막 독립한 듯 보이는 어린 고양이는 어미가 아주 잘 키워서 뽀동한 아이였어요. 어쩌다 그 넓은 도로 중앙에 갇히게 되었는지. 쌩쌩 달리는 커다란 쇳덩이들과 소음은 어린 고양이에게 큰 공포를 주었어요. 결국, 용기 있는 분들이 구조해 주셨어요. 

고양이 HCM
앞에 2장은 구조 직후 '새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시기, 세 번째는 '체다'가 되어 집에 온 후

콧등에 작은 상처가 난 어린 고양이는 모든 것이 무서울 수밖에 없었어요. 특히나 사람을 많이 무서워하고 경계했죠. 그런 고양이가 제 품에서 골골송을 부르며 잠이 들었을 때, 둘째로 들일 수밖에 없음을 예감했어요. 

 

2016년 3월 1일 어린 고양이는 체다라는 이름으로 저에게 왔어요. 

 

체다는 사람을 너무 무서워했어요. 하지만 고양이는 무척 좋아했죠. 세 마리의 형 고양이를 잘 따르는 모습은 다행이었지만, 저에 대한 경계는 좀처럼 옅어지지 않았어요. 집안에서 생활하는데도, 마치 길에서 사는 아이처럼 숨어 지내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 안타깝고 속상했어요. 그럼에도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였고, 비록 안을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제가 있는데도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배를 보인 채 편히 누워 자는 모습만으로 저는 충분히 만족하게 되었어요.

고양이 HCM
고양이 HCM
고양이 HCM
집길냥이 체다의 사랑스러운 모습

코숏 고양이의 HCM(비대성 심근병증)

뱅갈 고양이인 셋째 루치는 가족력이 있는 아이라 HCM에 대한 걱정이 컸어요. 당시 관련한 내용을 많이 검색해 봤었는데, 품종이 있는 고양이가 아닌 코숏 고양이에서도 HCM은 비교적 흔하게 발병하는 유전병이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어요. 전체 고양이 중 15~20% 가량이 HCM 이라고 하니 상당히 높은 비율이었죠.

 

그런데도 저는 방심했어요. 잘 먹고, 잘 놀고. 나를 피하긴 하지만 형들과 동생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고 마냥 건강한 줄만 알았어요. 

 

살이 빠지는 게 다이어트 기능 사료로 바꾸었기 때문인 줄 알았고, 숨 쉴 때 몸이 크게 오르내리는 것은 사람이 두려워 긴장한 탓이라고 생각했죠. 당시 첫째 베르가 안구 궤양으로 제 3안검 시술을 받고 매주 병원을 다니고 있었고, 막내 코타도 호흡기가 좋지 않아 치료 중이라는 핑계로 더욱 안일하게 넘어갔던거죠. 

 

HCM(비대성 심근병증, 심근 비대증) 의심 증상: 체중 감소, 식욕 부진, 호흡수 증가, 무기력한 모습, 뒷다리를 절룩거리면서 걷는 모습, 개구 호흡(운동이나 놀이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아지들처럼 입을 벌리고 숨을 헥헥 쉬는 모습) 

* 고양이의 분당 평균 심박 수는 120~140회라고 해요.

 

갑작스러운 발병과 이별

평소 간식을 줄 때나 사냥 놀이를 할 때를 제외하면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체다가 그날은 제 바로 앞에 와서 앉았어요. 그리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죠. 그리고 야옹야옹 소리를 내며 울었어요.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느낀 순간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이동장에 넣기 위해 아이를 잡으려 하니, 당연하게도 도망을 쳤고 그러는 사이 아이 호흡은 심각할 정도로 불안정해졌어요. 심한 개구 호흡과 도망치는 움직임도 평상시와 다르게 기민하지 못했어요.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흉수가 가득 차 있더군요. 흉수 천자를 하려 해도 아이 호흡이 너무 불안정했기에 일단 산소 방에서 안정을 취한 후 두 시간 정도 뒤에 흉수부터 빼냈어요. 

 

엑스레이 상으로 봐도 체다의 심장은 일반 고양이들에 비해 매우 컸어요. 흉수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HCM의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였죠. 혈액 검사 결과 다른 수치들은 문제가 없었지만, 심장 문제는 키트 검사에서도 나타났어요.

 

흉수 천자 후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어요. 심근이 두꺼워진 게 확인되었어요. 그리고 혈전이 생긴 것도요. 이뇨제와 항혈전제를 투여하며 상태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어요. 체다를 입원시키고 그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12월 5일부터 9일 오전까지 입원해서 계속 이뇨제를 투여하고, 엑스레이와 초음파로 흉수가 생기지 않는지 체크했어요. 식욕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 식욕촉진제를 맞기도 하고 병원에서도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주었어요. 그때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계열사 이동 직후라 새로 옮긴 회사와 팀에서 인수 인계받는 것과 겹쳐버렸죠. 

 

고양이 HCM
산소발생기를 대여하면 산소 방(리빙박스)은 무료로 대여, 월 12만원의 비용이 소요 / 노션에 진료 내용, 상담 내용 기록

 

체다가 퇴원하면 집에서 케어를 해야 하니 생각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녔어요.

 

1. 비용 부담 대비: 이미 검사와 입원 진료로 병원 진료비가 몇백을 훌쩍 넘어갔으니 앞으로 추가로 발생할 비용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어요.

 

2. 경구 투약 시 예민해진 아이의 호흡 불안정에 대한 대비: 체다는 사람 손을 타지 않는 아이라 약을 먹이기 위해 술래잡기를 하게 돼요. 건강할 때는 괜찮지만, 심장 문제가 있는 아이가 도망 다니느라 뛰고, 긴장하면 당연히 호흡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어요. 

- 첫 번째 대안은 격리장을 구입하여 아이의 행동에 제한을 두는 것. 이 경우 체다의 삶의 질이 너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어요.

- 두 번째 대안은 작은 방에 방묘문 설치 및 산소방 대여. 산소발생기와 플라스틱 박스, 연결할 수 있는 호스를 월 단위로 대여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더라고요.

 

3. 케어 환경 만들기: 최대한 빠르게 받아볼 수 있는 방묘문을 주문하기 위해 몇몇 업체에 전화해 배송 일정을 확인했어요. 다음날 받아볼 수 있는 업체를 찾을 수 있어서 바로 주문했어요. 그리고 산소방 대여 업체도 몇 군데 비용과 제공되는 서비스를 알아보고 예약했어요. 

퇴원 전날 방묘문을 설치했고, 퇴원 당일 오전에 친구의 도움으로 산소방 설치를 끝냈어요. 

 

4. 체다 진료 시 들었던 내용 기록: 처음 증상이 나타났던 시점부터 병원에서 검사받으면서 들은 내용, 유선상으로 선생님이 알려주신 체다 상태 등등을 기억나는 대로 전부 기록했어요. 당시 베르와 코타, 체다 세 아이가 병원에 다니고 있었기에 들은 내용이 뒤섞일 우려도 있었고, 감정적인 상태로 들은 내용이 금방 잊힐 것 같아 불안했거든요.

노션에 각각 아이들별로 또 날짜별로 수의사 선생님과 상담한 내용, 처방받은 약과 투약에 관한 이야기, 발생한 비용 등을 다 기록했어요. 

 

9일 오후 체다는 퇴원했고, 담당 선생님도 주의 사항이나 위급 시 행동 요령 등을 따로 노트해서 주실 정도로 정말 세심하게 살펴주셨어요. 다음 날은 출근 때문에 집을 비워야 했는데, 동생이 와서 체다를 지켜봐 주었죠. 하지만 10일 오후 발작을 일으켜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체다는 고양이 별로 먼 여행을 떠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미리 장례에 관한 것들을 알아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쩐지 아이들이 떠날 때를 미리 대비하는 게 내키지 않아 계속해서 미루기만 했어요. 우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장례식장을 찾아보는 게 지금 생각해도 너무 괴롭고 버거웠어요.

 

고양이 장례에 대한 경험과 어떻게 장례식장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어떤 절차로 진행되었는지는 다음 글에서 자세하게 공유할게요.

 

긴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을 보는 분들은 현재 보호자 혹은 예비 보호자일 것 같아요. 모든 보호자님이 반려동물과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일이 닥쳤을 때, 혹은 미리 대비하기 위해 정보를 찾아보는 보호자님들께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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